백일

영화 "엽기적인 그녀" 중에 그녀를 위해 지켜야 할 10가지 수칙을 말하는 장면이 있다.  주인공인 견우가 말하고 신승훈의 "I Believe" 가 흐르는 내가 무척 좋아하는 장면이다.

10가지 수칙 중 다섯번째가, "만난지 백일이 되면 강의실을 찾아가서 장미꽃 한 송이 내밀어 주세요.  되게 좋아할 거예요." 였다.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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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

조깅을 하고 집에 돌아왔으니 현관 앞에 또 오이가 있었다.

아아, 아저씨가 놓아 주신 거구나...... 고마워요. 잘 먹을께요!

아저씨한테 내가 오이 알레르기라서 오이를 못 먹는다는 것은 도저히 말할 수가 없다.  정말 친절한 아저씨니까.

오이 먹고 싶어!  아저씨가 가꾸는 오이는 특별히 맛있는 걸 알고 있는데도 못 먹는다.
너무 슬프다

Oi

ジョギングして家に帰ってきたら、玄関先にまたキュウリがあった。

おじさんがくれたんだなぁ。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いただきますね!

おじさんに、私がアレルギーでキュウリが食べられないってこと、どうしても言えない。本当に親切なおじさんだから。

キュウリ食べたい! おじさんが作るキュウリは特別に美味しいってことわかっているのに食べられない。悲し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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ハングル日記 수영장

1月からさぼりっぱなしだった宿題のハングル日記。少しずつでも復活しようと決めました。

7월18일 일요일 맑음

집에서 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수영장에 갔다.  그 곳에 간 건 처음이다.  온수풀이 아니라서 물에 들어간 순간  (>ㅂ<) 차가워!!  정말 물이 차가웠다.

45분간 자유형과 평영을 연습했다.  평영은 킥 요령을 아직 터득할 수 없어서 잘 수영 못했다.  어떻게 발로 물을 차는가가 과제다.

수영한 후 소바를 먹고 집에 돌아왔다.  도착하자마자 낮잠
2시간 푹 잠들어 버렸다

* * * * * *

家から車で10分くらいのところにあるプールに行った。そこに行ったのは初めて。温水プールじゃないので、水に入った瞬間、冷たい! 本当に水が冷たかった。

45分間、クロールと平泳ぎを練習した。平泳ぎはキックのコツがまだつかめなくて、上手く泳げなかった。足で水をどうやって蹴るかが課題。

泳いだ後、おそばを食べてから家に帰った。着くや否や昼寝。2時間爆睡。

* * * * * *

どういうふうに訳せばいい?とりあえず以下のように訳してみました。いい訳があったら教えてくださいね~

こつをつかむ 요령을 터득하다

キック 킥, 킥하다

爆睡 푹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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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오늘은 오군의 생일날이다.  살아 있으면 마흔일곱 살이 된다.  우와! 마흔일곱 살이다니......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요?

요즘 나 안 돼죠?  정신 차려야죠?

네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나 주었던 걸 너무 고맙다고 생각해요.  내 희망이었고 아름다운 추억이니까.

난 거기엔 아직 갈 수가 없나 봐요.  조금 더 기다려 주세요.

생일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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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요일은

이번 일요일은 오빠를 만날 수 있는 날이다

어떤 옷을 입고 갈까?

도쿄의 날씨는 어떨까?

비네......오히려 좋을 거다.  꽃가루 알레르기 환자에게는

머리는 염색도 했다.  속옷도 새로 샀다

근데 나에게는 오빠가 두 명 있단다

양다리 걸치는 건 아니다

한 명은 승훈 오빠, 또 한 명은 마음속에서 몰래 사랑하는 오빠

이번 일요일에은 그 두 오빠를 다 만날 수 있다

빛나는 오빠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볼 뿐이겠지만......

그래도 난 괜찮다

같은 곳, 같은 시간에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니까

가슴이 뛰고 있다

마음이 들떠 있다

마음이 설렌다

일요일이 빨리 오면 좋겠다

이번 일요일이 영원히 계속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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まちがい探し@ハングル日記4

久しぶりに宿題のハングル日記を書いたところ、あ~あ、なんて初歩的なまちがい。。。
もう勉強やめた方がいいんじゃない

8월31일에 시험을 보러 나고야 名古屋 에 간 김에 이누야마죠 犬山城 에 갔다.  이누야마죠에 가려면 나고야역에서 전철을 타고 이누야마역 혹은 이누야마유엔 犬山遊園 역에서 내리면 된다.  저는 이누야마유엔역에서 내렸다.

先生のチェックが入ったのは1か所です。どこでしょう?

私はすぐにわからずに、ほんと、とほほ_| ̄|○でした。
こういうところに気づかないとね。3回くらい読み返したのに、全然おかしいと思いませんでした。才能ないよ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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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한국 여행기 <3>

한산무시문화제를 안내해 주신 할아버지는 84살이고 서천역 역장이셨던 분이었다.

축제를 구경한 후 할아버지가 서천 시내에 가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자고 해서 우리는 택시를 타고 시내로 갔다.

서천 시가는 전 서천역 근처에 있다.  일본 쇼와(昭和)시대 초기와 거의 비슷한 건물이 늘어서는 상가가 있고 생선과 야채를 파는 큰 시장이 있다.

할아버지가 자주 다니시는 다방은 그 시장 근처에 있었다.  간판에는 '찻집' 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다방' 이라는 분위기가 있는 집이었다.

'이런 다방에 한 번 들어가보고 싶었어' 라고 설레면서 나는 다방에 들어갔다.

테이블과 소파가 몇 세트 있는 집이었고 안쪽에서는 아저씨들이 모여서 화투를 치고 있었다.  50대쯤의 아주머니가 혼자서 하는 집인 것 같았다.

차림표에는 커피 외에 여러가지 종료의 차가 쓰여 있었는데 전부 다 인스턴트 차였고 한 잔에 천원이었다.

할아버지는 아주머니와 다른 단골 아저씨들에게 인사한 후 소파에 앉아 일본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할아버지는 귀가 어두우셔서 우리가 하는 질문은 거의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할아버지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이야기는 주로 러일전쟁에 대한 것이었다.  노기 대장(乃木大将)이 활약해서 일본이 승리했다는 것,  일본은 이겼지만 노기 대장은 아들 2명을 전지에서 잃었던 것,  그 때 노기 대징이 천황께 한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까지.

할아버지는 지금도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지만 그 이야기가 소년 시절에 외웠던 것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바로 우리 아버지가 제2차 대전 쯤에 국민학교에서 배웠다고 하셨던 이야기와 같았기 때문이다.

이윽고 할아버지의 오래된 친구라는 할아버지가 오셨다.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셨던 분이었다.  우리들을 보고 일본말로 말을 걸어 오셨다.  아주 오랜만에 일본말을 썼다고 하면서.

그 할아버지는 고등학생 때까지 알본어로 교육을 받았다고 하셨다.  전쟁 때 일본이 한 짓은 용서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지금은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하는데 일본이 독도 문제를 꺼내서 역사를 왜곡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셨다.

그런 이야기를 한국말로 들었다면 반론해야 한다는 마음이 생겼을지도 몰랐지만 일본말로 들었기 때문에 아무런 반론도 할 수가 없었다.  일본 정부가 저지른 것은 할아버지들에게 여든까지 일본말로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을 준 정도로 강한 것이었다는 현실을 눈 앞에서 봤기 때문이었다.

'일본이 잘못했어요.  저같은 젋은 사람들은 같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그와 같은 것을 저는 한국말로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다방 문 앞에서 헤어질 때 악수하면서 '즐거웠어요' 라고 말했더니 할아버지는 '반가웠어요' 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남아 있다.

【今日の単語】

화투를 치다 花札をする

귀가 어둡다 耳が遠い
귀가 먹다 は、耳が全く聞こえないことで、聞く耳を持たないという意味にも使われるらしい。

러일전쟁 日露戦争。順番は「露」「日」なのです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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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한국 여행기 <2>

<서천으로 2>

버스가 낮은 산으로 향해 오르막길을 올라가다가 길가에 자동차가 많이 주차돼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곧 한산모시문화제 장소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많이 와 있었다.  관광버스도 와 있었다.

입구에 있는 안내소에서 안내서를 받으면서 안내원에게 돌아가는 버스 시간을 물어 보니 안내소 안쪽에서 할아버지가 나오셨다.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한 미소를 지으시면서.

그 할아버지는 일본어 통역 안내원이셨다.  일본 사람이 오면 안내할 수 있도록 안내소에서 대기하셨던 것 같았다.  우리는 뜻밖에 공짜로 안내해 주시는 할아버지를 만나서 '오늘은 운수가 좋은 날이구나......' 하면서 구경을 시작했다.

그 날은 날씨가 아주 좋았다.  맑지만 너무 덥지 않고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입구 근처에는 모시풀밭이 있었다.  모시풀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잎이 깻잎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모시는 모시풀의 잎이 아니라 2m정도 라란 줄기로 만들어진 것이다.  먼저 칼로 줄기를 가늘게 쪼개고 물에 담가서 태모시라는 섬유를 만든다.  놀라는 것은 그 다음 단계다.

지붕이 있는 걸상 위에 할머니들이 앉아서 태모시를 입에 물면서 뭔가를 하고 계셨다.  이 작업은 째기라고 한다고 했다.  태모시를 이로 반으로 째고 또 반으로 째고 그렇게 섬유를 아주 가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짼 모시를 무릎에 대고 실을 꼰다.  이 작업은 삼기라고 한다.  이렇게 할머니들의 입, 손, 무릎으로 모시실이 만들어진다.  모시실이 가늘면 가늘수록 가는 모시를 짤 수 있다.  '잠자리날개' 라고도 불리는 가느다란 모시는 아주 비싼 가격으로 거래된다.

째기와 삼기를 하고 계시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니 한산모시가 왜 이렇게 비싼 것인지 납득이 갔다.  모시실 한 가락 한 가락에 할머니들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전통 공예를 이어가려고 하는 젊은이들은 적다고 한다.  일본도 그렇듯이 배우기 힘들고 많은 수련이 필요한 일에는 한국의 젊은 사람들도 들어가기가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 전통을 이어받아서 아름다운 모시를 영원히 남겨 주면 좋겠다.

【今日の単語】

운수가 좋다 運がいい  

모시 モシ、苧(からむし)で織った布  모시풀 植物としての苧

쪼개다 裂く  째다 裂く

걸상 縁台  실을 꼬다 糸を撚る

※ モシに関しては「2009韓国旅行(2)」の写真を見てください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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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한국 여행기 <1>

2009年6月11日~15日の韓国旅行のうち、13日にハンサンモシ祭りを見に舒川へ行った時のことをハングル日記(3話)にしました。写真は日本語の旅行記で紹介する予定です。

<서천으로 1>

충청남도 서천(舒川)군에서 열리는 한산무시문화제(ハンサンモシ祭り)에 가려고 서울 용산역에서 새마을호를 탔다.  한국에서 기차를 타고 여행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새마을호는 일본의 특급열차와 똑같지만 앞 자리와의 사이가 넓어서 다리를 펴고 편하게 앉을 수 있어서 좋았다.

기차는 수원을 지나, 천안(天安)을 지나 장항선(長項線)에 들어갔다.  창밖에는 낮은 산이 보였고 모내기한지 한 달이 지났나 하는 논이 펼쳐져 있었다.  일본의 시골을 달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끔 집들이 보였는데 그 지붕이 화려한 빨간색인 것을 보니 '아아, 여기는 한국이구나......' 하고 생각했고 간판에 한글이 쓰여 있는 것을 보니 '아아, 역시 여기는 한국이구나......' 하고 느꼈다.

그 집이나 간판이 없으면 내가 사는 나가노 현과 아무 다름없다.  모내기한지 한 달이 지난 것 닽은 그 푸른 논은 내가 날마다 보고 있는 옆 집의 논과 똑 같았다.

한국도 일본과 같이 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해 준 풍경이었다.  하지만 잘 생각하면 벼농사라는 것은 한반도에서 일본에 전해온 것이었다.  똑같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논이 그렇게 똑같은 것은 인정한다치고 철도를 따라 있는 들이나 빈 터에 무성한 잡초도 똑같은 것에 많이 놀랐다.  그 잡초 중에 화려한 분홍색 꽃이 피어 있었는데 '무시토리나데시코' 인 것 같았다.  그 화초는 지금 우리 집에서도 한창인 아주 낯익은 식물이다.

일본에는 관상용으로 유럽에서 수입된 그 화초는 야성화했다.  즉 기화한 식물이다.  그 식물이 한국에서도 기화한 모양이다.  들에서 예쁘게 피어 있는 무습을 보면서 하나 더 한국과 일분의 공통점을 찾아냈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비슷한 줄은 몰랐다.  한국어와 일본어가 비슷한 것보다 더 사람들의 얼굴이 비슷하고, 얼굴이 비슷한 것보다 더 풍경이 비슷했다.

기차는 이런 시골 풍영 속을 달리고 서울에서 3시간10분 걸려 서천역에 도착했다.  얼마나 오래되고 쓸쓸한 역일까 상상했던 서천역은 뜻밖에 새롭고 세련된 역이었다.

서천역이 있는 장항선은 작년 12월에 직선화가 완성됐고 그 동시에 역도 새 곳에 이전해서 새로운 역으로 탈바꿈했다고 한다.  지어진지 반 년밖에 지나지 않은 역 앞에는 안내소도 가게도 없었다.

서천역까지 가면 한산모시문화제를 알리는 깃발이라도 휘날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광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역에서 기차표를 파는 역원에게 물어 봤더니 축제 장소로 가는 버스가 있다고 가르쳐 주셨다.

20분 정도 기다리다가 그 버스가 와서 천원을 내고 탔다.  정확하게는 어디로 가는지 잘 모르는 버스 안에는 얼굴이 검게 탄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앉아 계셨다.  그 누구도 축제에 가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이 버스는 정말 한산모시문화제에 가는 버스인가......'
불안한 마음으로 손잡이를 꽉 잡고 버스가 가는 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今日の単語】

모내기 田植え  논 田んぼ  벼농사 稲作

들 野原  빈 터 空き地  잡초 雑草  화초 草花

무성한 茂っている  야성화 野生化  기화한 帰化した

쓸쓸한 さびしい  세련된 洗練された  탈바꿈했다 変身した

깃발이 휘날리다 幟がはためく  얼굴이 검게 탄 黒く日焼けした

손잡이를 꽉 잡고 手すりをぎゅっと握りし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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まちがい探し@ハングル日記3

もうすぐGWですねぇ。花粉症ももう少しで終わるかな?早く終わってほしいな・・・鼻の周りががさがさになっちゃって。。。

では、まちがい探しです。
今回は文法的なまちがいというより、日本語直訳表現を韓国語らしく直す問題と、より韓国語らしくする問題です。青字の部分です。

4월13일 맑음  벚꽃이 한창

4월13일은 1970년대의 인기가수 사이죠 히데키(西城秀樹)의 생일이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친구인 S군의 생일이다.

5년전에 중학교 동창회에서 아주 오랜만에  S군을 만났다.  15년만이었을까?  20대 후반에서 30대에는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한창이었던 시절은 모른다.

S군은 12살이 되는 딸의 아버지가 됐고 나도 나이보다 조금 젊게 보이지만 분명히 아주머니가 됐다.  S군은 잘 생긴 편이 아닌데다가 머리가 벗겨져서 이제는 가슴이 설레는 상대가 아니었다.  성격은 여전히 좋았다.

그 동창회 후 메일을 보내고 받는 친구가 됐다.  그래서 S군의 생일날에는 꼭 축하 메일을 보내 왔다.

S군은 옛날에 사귀던 남자친구가 아니다.  다만 초등학교 6학년 때와 중학교 3학년 때 우연히 같은 반이었기 때문에 줄업사진에 같이 비쳐 있는 친구다.

그리고 S군은 내 첫사랑을 잘 기억해 주는 사람이다.  S군의 친한 친구였던 O군이 내 첫사랑이었다.  당시 나는 너무 수줍어서 좋아하는 O군과 말 한 마디도 못 했다.  하지만 O군도 나를 좋아하는 것은 느끼고 있었다.

그런 내 마음과 O군 마음을 S군만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동창회에서 오랜만에 만났을 때까지 그것을 기억해 주었었다.

너무 슬픈 일이지만 O군은 25살 때 이 세상을 떠나 버렸다 
이야기를 많이 못 한 채.  O군은 초등학교 때 사이죠 히데키가 너무 좋아서 항상 히데키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밝은 성격이라서 안기가 있었다.  살아 있었다면 어떤 남자가 됐을까.

4월13일은 S군의 생일이기도 하고 O군의 추억에 젖는 날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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